한국 전통 설화에는 인간이 상상한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 수도 없이 등장합니다. 구미호, 도깨비, 물귀신, 천연두신, 장산범 같은 괴물들은 단순한 환상적 존재가 아니라, 당대 사회의 공포, 교훈, 윤리적 경계를 상징하는 서사 장치로서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과거에는 이들 존재가 이야기 속에서만 살아 있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AI 이미지 생성 기술과 3D 모델링 기술의 발전으로 이제는 시각적 존재로도 구현이 가능해졌습니다. 이는 디지털 민속의 일환으로, 전통 설화를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하고 전승하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괴물의 ‘생김새’를 구체화하는 작업은 원형성, 지역성, 해석 다양성 등의 측면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설화 속 괴물들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변형을 보여 왔기 때문에, 하나의 이미지로 고정하는 과정은 문화의 유동성과 민속적 상상력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디지털 민속 콘텐츠로서 AI 기반 괴물 시각화 작업이 가진 기술적 가능성과 문화적 문제점을 함께 검토하며, 설화의 다양성과 전통의 생명력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 논의하고자 합니다.
디지털 민속 콘텐츠로 구현되는 AI 괴물 이미지의 기술적 과정
AI를 활용한 설화 속 괴물 시각화 작업은 복수의 기술이 결합된 복합적 과정입니다. 우선 텍스트 기반 자료에서 괴물의 외형 묘사를 추출하기 위해 자연어처리(NLP) 기술이 사용되며, 이후 텍스트 투 이미지(Text-to-Image) AI가 시각적 형상화를 수행합니다. 예를 들어 구미호에 대한 묘사가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서술되어 있다면, AI는 이 문장을 기반으로 인간형의 아름다운 여성과 여우의 특징을 결합한 이미지를 생성합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AI는 학습 데이터 기반으로 이미지를 구성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한국 전통 미의 기준보다는 서구적 미학이 반영된 결과물이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괴물의 상징성과 문화적 맥락이 시각적으로 전달되지 않고, 단지 시각적 공포나 화려함에 집중된 이미지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디지털 민속 콘텐츠로서 설화 괴물 시각화는 단지 시각적 ‘재미’ 이상의 문화 해석적 깊이를 요구받게 되며, 텍스트 기반 서사와 시각적 결과물 간의 문화적 괴리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설화의 해석 다양성과 디지털 민속 콘텐츠의 시각 고정성 논란
설화는 정답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동일한 도깨비라 하더라도 지역에 따라, 전승자에 따라, 시대에 따라 모습과 성격이 달라지는 것이 설화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따라서 AI가 특정 형상의 괴물을 ‘이것이 정답’처럼 이미지화할 경우, 원래 설화가 지닌 해석의 다양성이 축소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는 디지털 민속 콘텐츠의 특성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됩니다. 디지털 민속은 전통문화를 기술적으로 전승할 뿐만 아니라, 그 유동성과 다층성을 살아 있는 콘텐츠로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하지만 AI 이미지 생성 시스템은 하나의 텍스트를 하나의 이미지로 변환하는 경향이 강하므로, 결국 시청자나 사용자에게 특정 형상이 ‘전통적 정본’처럼 인식되는 문제가 생깁니다. 예컨대 ‘장산범’이 긴 흰 머리카락과 붉은 눈을 가진 여성형 귀신으로만 반복 재현된다면, 그 외형은 고정되며 새로운 해석의 여지는 사라집니다. 이러한 시각의 고정성은 민속 콘텐츠의 창조성과 전통 해석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으며, 특히 교육이나 박물관 전시 등 공적 영역에서는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문화적 감수성과 디지털 민속 윤리: AI 괴물 시각화의 사회적 영향
AI가 생성한 설화 괴물 이미지가 디지털 민속 콘텐츠로 유통될 때, 가장 민감한 문제 중 하나는 문화적 감수성입니다. 괴물은 단지 ‘이상한 존재’가 아니라, 때로는 질병, 장애, 타자성, 여성성, 지역성 등의 사회적 긴장을 상징하는 기호로 작동해 왔습니다. 따라서 괴물의 형상이 인종적 편견이나 성차별적 요소, 지역 혐오 등을 반영한 이미지로 구현될 경우, 이는 단순한 디자인 오류를 넘어 문화적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두창귀신’을 붉은 얼굴에 부스럼투성이로 그려낸 AI 이미지가 실제로는 특정 피부 질환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면, 이는 디지털 민속 콘텐츠가 의도치 않게 차별을 조장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설화 괴물의 시각화 작업은 창작과 해석의 자유뿐만 아니라, 역사적 맥락과 현재의 문화 윤리를 함께 고려해야 하는 고도의 민감한 작업입니다. 디지털 민속 콘텐츠 제작자는 단지 시각적 흥미나 클릭 수를 위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통의 본질을 현대 사회와 조화롭게 번역할 수 있는 문화적 중재자로 기능해야 합니다.
공공적 디지털 민속 생태계를 위한 협업 기반 AI 시각화 전략
AI를 통한 괴물 시각화가 단지 개인 콘텐츠 제작자의 손에서 생산되고 소비되는 구조에서 벗어나, 공공적 디지털 민속 생태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협업 기반 전략이 필요합니다. 우선, 민속학자, 지역 연구자, 시각예술가, AI 개발자가 함께 참여하는 다학제 협업 구조가 요구됩니다. 각 지역의 설화를 수집하고, 괴물에 대한 복수 해석을 기록하여, 하나의 이미지가 아닌 ‘다양한 이미지 묶음’ 형태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방식이 바람직합니다. 예를 들어 ‘도깨비’를 하나의 형상으로 고정하기보다는, 도깨비가 등장하는 다양한 지역 설화를 기반으로 5~6가지 버전의 도깨비 이미지를 제작하고, 그 차이를 해설하는 콘텐츠가 제작될 수 있습니다. 또한 메타버스나 VR 기반의 디지털 민속관을 통해, 사용자가 각 설화를 체험하고 스스로 괴물 형상을 선택하거나 창조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도 새로운 시도입니다. 이를 통해 전통 설화는 고정된 ‘정답 콘텐츠’가 아니라, 계속해서 열리고 진화하는 이야기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민속의 핵심은 ‘살아 있는 전통’입니다. 그 전통이 AI 시대에도 살아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기술 중심이 아닌 공동체 중심의 시각화 전략이 지속적으로 실현되어야 합니다.
디지털 민속 교육 현장에서의 괴물 시각화 콘텐츠 활용과 한계점
AI를 통해 생성된 설화 속 괴물 이미지들은 최근 교육 콘텐츠로도 활발히 활용되고 있습니다. 디지털 민속 콘텐츠로 구성된 수업 자료는 학생들에게 전통 설화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데 효과적이며, 시청각 중심의 학습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강점이 있습니다. 특히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는 국어, 도덕, 역사 교과와 연계하여 ‘설화 속 괴물의 이야기와 상징’을 주제로 프로젝트형 학습이 가능하며, 학생들이 직접 AI를 활용해 자신만의 괴물을 시각화해 보는 창의융합 활동으로도 확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간과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기준의 부재’입니다. AI가 만들어낸 이미지는 시각적으로는 매력적이지만, 문화적 맥락과 윤리적 의미에 대한 이해 없이 사용될 경우 왜곡된 해석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구미호를 단순히 매혹적인 여성 캐릭터로만 소비할 경우, 그 본래의 설화적 의미—즉 인간 욕망과 속임수, 또는 변신에 대한 경계심—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육 현장에서 디지털 민속 콘텐츠로서 괴물 시각화를 사용할 때는, 해당 이미지가 가진 문화적 의미와 민속학적 배경을 함께 설명할 수 있는 해설 자료와 지도 방안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합니다. 콘텐츠의 매력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 콘텐츠가 가진 의미의 층위를 정확히 해석하고 존중하는 문화 감수성입니다. 이를 통해 디지털 민속은 단지 전통을 보여주는 수단이 아니라, 미래 세대와 함께 전통을 다시 이야기하고 재창조하는 장으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디지털 민속 아카이브를 위한 시각화 기록 전략
AI 기술을 활용해 설화 속 괴물을 시각화하는 작업이 단기적인 흥미나 콘텐츠 소비에 머물지 않고, 장기적으로 디지털 민속의 지속 가능한 자산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아카이브화 전략이 필요합니다. 현재 많은 AI 기반 민속 이미지 콘텐츠들은 플랫폼이나 SNS에 개별적으로 게시되며, 제작자의 설명이나 맥락 없이 유통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속은 특정한 시간, 공간, 공동체의 맥락에서 태어난 이야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각화된 괴물 이미지 역시 누가, 왜, 어떤 배경으로 제작했는지를 기록하고, 텍스트 자료와 함께 메타데이터로 정리해야 합니다. 이는 디지털 민속 콘텐츠의 보존성과 활용성을 동시에 높이는 기반이 됩니다.
예를 들어 ‘AI로 생성된 도깨비 이미지’가 단순히 이미지 파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도깨비 설화’, ‘2025년 ○○학교 수업 활용용’, ‘△△작가의 재해석 버전’ 등과 같이 설명이 덧붙여진다면, 이 콘텐츠는 단순한 시청각 자료가 아닌 전통문화의 현대적 계승 모델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기록 방식은 향후 전시, 연구, 해외문화교류 등 공공 목적에 활용될 수 있으며, 다양한 해석이 병렬적으로 축적되는 ‘민속 멀티버전 아카이브’ 구축에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민속은 정답을 하나로 고정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의 다양성을 축적하고 공유하는 생태계이기 때문에, 시각화 결과물의 맥락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작업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AI 시대에 전통을 재해석한다는 것은 곧, 기록을 새롭게 구성하고 미래로 확장하는 문화적 실천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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