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민속학

디지털 민속학은 문화 수탈인가, 세계화를 위한 도구인가

1004yappy 2025. 7. 11. 22:14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민속학 연구와 전통문화 전승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습니다. 과거에는 구술, 필사, 사진 중심으로만 수집되던 민속자료들이 오늘날에는 AI, AR, 메타버스 등의 기술을 통해 보다 생생하고 입체적인 콘텐츠로 재현되고 있으며, 이는 ‘디지털 민속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및 실천 영역의 등장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디지털 민속학은 공동체의 기억과 전통을 보존하고 전 세계적으로 확산시키는 도구로서 높은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화 수탈 문제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윤리적 쟁점으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디지털 민속학의 두 얼굴 문화 수탈인가, 세계화 도구 인가

 

특히 AI가 전통 설화, 무형유산, 지역 방언 등을 학습하여 이미지·음성·텍스트로 재생산하거나, 글로벌 기업이 민속 콘텐츠를 활용해 수익을 창출하는 경우, 그 문화적 출처와 맥락이 삭제되거나 상품화되는 위험이 존재합니다. 이에 따라 디지털 민속학은 세계화를 위한 긍정적 도구인 동시에, 문화 착취의 잠재적 경로라는 이중성을 띠게 됩니다. 지금부터 이러한 이중성 속에서 디지털 민속학이 직면한 쟁점들을 중심으로, ‘문화 수탈’과 ‘문화 확산’이라는 양극의 관점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디지털 민속 콘텐츠 확산의 가능성과 세계화 전략

디지털 민속학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전통문화의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넓힌다는 점입니다. 전통적으로 특정 지역이나 공동체 내에서만 구전되던 민속 설화나 의례, 민요 등은 디지털화 과정을 거쳐 유튜브, 블로그, 아카이브 플랫폼을 통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콘텐츠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특히 AI 기반의 자막 생성, 이미지 생성기, 음성 합성 기술은 이러한 콘텐츠의 다국어 번역과 글로벌 시청자 확보를 용이하게 만들어 줍니다. 이는 디지털 민속 콘텐츠가 특정 민족이나 국경을 넘어 세계 문화 자산으로 확장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중요한 동력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무속 설화를 AI 일러스트와 영어 내레이션을 통해 영상 콘텐츠로 제작하고 이를 유튜브에서 공개할 경우, 이는 국내외 시청자 모두에게 한국 민속의 미적·서사적 가치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이 됩니다. 나아가 이러한 콘텐츠는 교육, 관광, 문화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며 디지털 민속의 실용성과 경제적 확장성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디지털 민속학은 전통문화의 경계를 넘어서고, 새로운 형태의 세계화를 추구할 수 있는 도구로 기능할 수 있는 잠재력을 분명히 지니고 있습니다.

 

디지털 민속의 글로벌 확산이 불러온 문화 수탈 논란

그러나 이러한 확산은 언제나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디지털 민속 콘텐츠가 특정 문화의 맥락과 공동체의 동의 없이 수집되고 가공되어 상업적 콘텐츠로 소비되는 경우, 이는 명백한 문화 수탈의 사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특히 소수민족이나 전통 공동체의 구술, 의례, 복식, 민요 등은 외부인이 기술을 이용해 수집하고 편집한 뒤, 원래의 소유 공동체에는 아무런 이익을 환원하지 않는 구조로 유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디지털 콜로니얼리즘’이라는 신식민주의적 접근을 강화할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디지털 민속 콘텐츠의 AI 학습 역시 윤리적 문제를 내포합니다. AI 모델이 특정 지역 방언, 설화, 복식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해당 공동체의 명시적 동의 없이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기반으로 이미지를 생성하거나 음성을 합성하는 경우, 이는 문화적 저작권 침해와도 연결됩니다. 문화는 단순한 데이터셋이 아니라 특정 공동체의 기억, 정체성, 감정이 결합된 유기체이기 때문에, 그 디지털화에는 반드시 정당한 절차와 문화적 감수성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디지털 민속은 보존이 아닌 왜곡, 확산이 아닌 착취의 수단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디지털 민속의 윤리적 실천을 위한 협업 구조의 필요성

이러한 윤리적 문제를 극복하고 디지털 민속학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공동체와의 협력 기반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는 단순한 동의서 확보나 정보 제공을 넘어, 콘텐츠 제작 및 수익 배분에 이르기까지 공동체가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구조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지역 설화를 기반으로 AI 콘텐츠를 제작할 경우, 해당 설화의 원 출처를 명시하고, 공동체 인물들이 내레이터나 해설자로 참여하며, 수익이 발생할 경우 일정 부분을 지역 문화재단에 환원하는 등의 실천이 요구됩니다.

이러한 접근은 디지털 민속 콘텐츠가 ‘누구의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을 내리는 과정입니다. 민속은 공동체가 만들어낸 문화의 결집체이자 정체성의 산물이기 때문에, 그 디지털화 과정 역시 공동체 중심으로 설계되어야 하며, 기술자와 연구자, 디자이너는 조력자로 기능해야 합니다. 디지털 민속의 윤리적 실천은 바로 이러한 공동체 중심의 협업 구조 속에서만 가능하며, 그래야만 문화 수탈이 아닌 문화 공유로의 전환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기술 중심에서 문화 중심으로: 디지털 민속의 방향성

궁극적으로 디지털 민속학은 기술이 아닌 문화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AI, 빅데이터, AR 등의 기술은 전통문화의 전달력을 강화하는 수단일 뿐이며,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전통 설화의 시각화, 의례복의 복원, 민요의 음성합성 등은 모두 전통문화가 지닌 고유한 의미와 공동체의 기억을 전제로 해야만 진정한 가치가 발생합니다. 기술은 이를 보다 넓고 깊게 확산시키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 그 전제가 바로 문화 주체성의 유지입니다.

따라서 디지털 민속학은 기술 중심의 실험적 영역이 아니라, 문화 중심의 실천적 학문으로 자리매김해야 하며, 이는 학술, 교육, 산업, 공공정책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적용 가능성을 확대시키는 기반이 됩니다. 또한 전 세계의 민속학 연구자와 디지털 인류학자들이 교류하고 협업하는 국제적 네트워크 구축 역시 중요한 과제가 됩니다. 문화 수탈이라는 우려를 넘어, 디지털 민속이 새로운 세계화의 윤리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때, 그 실천은 더욱 의미 있게 확장될 수 있습니다.

디지털 민속 자료의 상업화: 플랫폼 중심 구조의 한계와 과제

디지털 민속 콘텐츠는 플랫폼 환경에서 빠르게 유통되고 있지만, 이 유통 구조가 문화적 주체성을 존중하지 않은 채 상업적 이익에 집중될 경우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특히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릴스와 같은 알고리즘 기반 플랫폼은 콘텐츠의 맥락보다는 시청률, 클릭 수, 광고 수익 등을 우선시하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디지털 민속 콘텐츠가 단순한 ‘콘텐츠 상품’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존재합니다. 예컨대, 전통 무속 장면을 자극적으로 편집해 오락 콘텐츠로 소비시키거나, 민속 설화를 비현실적 이펙트와 결합해 판타지 장르로만 소화하는 경우, 이는 문화적 왜곡뿐 아니라 공동체의 신앙과 기억에 대한 모독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기술 활용 자체보다는 그 활용 방식과 유통 구조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부족한 데서 비롯됩니다. 디지털 민속 콘텐츠가 플랫폼에서 소비되는 양상은 점차 ‘밈화(meme-ification)’되고 있으며, 이는 전통문화의 감정적 깊이와 의례적 무게감을 희화화하는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큽니다. 더욱이 이러한 콘텐츠가 무분별하게 번역되거나,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상업적으로 재유통될 경우, 해당 문화의 원 맥락은 사라지고, 민속은 ‘엑조틱한 볼거리’ 이상으로 작동하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플랫폼 중심 유통 구조 안에서 디지털 민속의 상업적 활용과 문화적 맥락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절실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문화 콘텐츠 크리에이터에게 민속학적 감수성을 교육하고, AI 기술을 활용하더라도 해당 전통의 기원과 의미를 명확히 설명하는 구조적 장치 [예: 콘텐츠 내 원출처 명시, 제작 의도 공개, 지역 공동체의 자문 참여 등]가 필수적으로 요구됩니다. 상업성과 공공성의 균형 없이 디지털 민속은 ‘콘텐츠 산업’이라는 이름 아래 또 다른 형태의 문화 수탈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디지털 민속의 국제 표준화 논의와 문화 공정성 확보

디지털 민속 콘텐츠의 글로벌 유통이 가속화되면서, 전통문화 콘텐츠에 대한 국제적 표준화와 문화 공정성에 대한 논의도 점점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와 관련하여 특정 국가나 공동체가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디지털 콘텐츠 제작 시 이 권리 분쟁이 전면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예를 들어, 한국과 중국, 일본이 공유하는 전통 설화나 제례 의식이 디지털 민속 콘텐츠로 제작되는 경우, 누가 그 문화의 ‘정통 소유자’인지 판단하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AI 기술은 이와 같은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며, 결과적으로 문화 주체의 경계를 흐리고, 기존의 전통 구조를 훼손할 우려가 있습니다.

이에 따라 각국 또는 국제기관 차원에서 디지털 민속 콘텐츠에 대한 윤리적 제작 가이드라인과 데이터 표준화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메타데이터 설계 시 반드시 포함해야 할 요소(지역, 시기, 공동체, 용례, 출처 등)를 명시하고, 콘텐츠의 저작권 정보와 공동체 동의 여부를 투명하게 기록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또한, 생성형 AI가 전통문화 데이터를 학습할 때 ‘누가, 어떤 목적에서 학습하도록 허용했는가’에 대한 공정한 기준도 함께 논의되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전통문화는 국가 간 경계를 넘는 보편 자산이 될 수 있으며, 동시에 디지털 민속의 윤리적 공유 모델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학계, 공공기관, 디지털 제작자 간의 다자 협업 모델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단일한 기술자 중심이 아닌, 공동체 대표, 민속학자, 언어학자, 디자인 전문가, 법률가 등이 참여하는 다층적 협업 구조가 마련될 때, 디지털 민속 콘텐츠는 특정 문화의 편향 없이 다각도로 구현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단순한 표준화에 머무르지 않고, 문화적 공정성(fairness)이라는 더 큰 윤리적 원칙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디지털 민속이 세계화를 지향하되, 그 세계화가 누군가의 침묵과 착취 위에 세워져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이 과정의 핵심입니다.

디지털 민속 실천의 새로운 패러다임: '공동 제작'에서 '공동 소유'로

디지털 민속 콘텐츠의 미래는 단순한 기술 발전이나 확산 속도가 아닌, 공동체 참여 기반의 제작과 소유 구조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콘텐츠 제작자가 공동체 자료를 수집하고 가공하는 일방향적 방식이 일반적이었다면, 이제는 공동체가 직접 제작과 소유 주체로 참여하는 '공동 창작 모델'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지역의 노인이 자신의 설화를 구술로 전하고, 해당 영상의 AI 편집과 유통 과정을 자녀 세대가 함께 담당하는 ‘가족형 디지털 민속 프로젝트’는 공동체 내부의 지식과 기술을 동시에 활용하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디지털 민속을 ‘자료’가 아닌 ‘관계의 산물’로 이해하는 관점을 전제로 합니다. 전통문화는 공동체 내부에서 시간과 공간을 넘어 지속적으로 재창조되어 온 것이며, 디지털화는 이 창조적 실천의 연장선에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디지털 민속 실천은 ‘디지털 전환’이 아니라 ‘디지털 전승’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하며, 이때 가장 중요한 원칙은 바로 공동 소유의 구조입니다. 즉, 콘텐츠의 저작권, 수익 구조, 향후 확장 가능성 등에 대해 공동체가 결정권을 가지고 실질적으로 관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디지털 민속학은 더 이상 전문가와 연구자의 영역만이 아닌,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 가는 문화 실천의 장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기술이 공동체를 대체하지 않도록, 오히려 공동체의 역량을 디지털 플랫폼 위로 이끌어내는 실천이 중요합니다. '공동 제작'을 넘어서 '공동 소유'로, 이는 디지털 민속 콘텐츠의 진정한 문화 민주화를 의미하며, 세계화를 위한 윤리적 기초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