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민속학

AI 기술과 디지털 민속 시대, 무형문화재는 무엇을 잃을 수 있는가

1004yappy 2025. 6. 30. 13:37

무형문화재는 말 그대로 ‘형태 없는’ 문화유산으로, 인간의 몸짓, 노래, 기술, 구술 등을 통해 세대를 넘어 계승되어 온 전통입니다. 판소리, 종묘제례악, 김장문화, 장인 정신이 담긴 공예 기술 등은 모두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들은 단순히 기능적 결과물이 아니라, 그 행위가 수행되는 맥락, 전승자의 감각, 지역 공동체의 기억을 포함하는 총체적인 문화체계입니다. 그런데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이러한 무형문화재를 데이터화하고 학습시켜 보존하거나 재현하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AI 기술과 디지털 민속 시대로 무형문화재에 발생할수 있는 문제

 

디지털 민속이라는 개념은 이런 맥락에서 주목받고 있으며, 무형문화재도 이제 AI가 다룰 수 있는 콘텐츠 자원으로 간주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반드시 검토되어야 할 것은 바로 윤리적 문제입니다. 기술은 복제와 확산을 전제로 움직이지만, 무형문화재는 고유성과 공동체 중심의 전승을 전제로 존재합니다. 이 글에서는 무형문화재를 AI가 학습할 경우 생길 수 있는 윤리적 문제들을 디지털 민속의 시각에서 분석하고자 합니다.

 

AI 학습과 무형문화재의 ‘원형성’ 훼손 문제

무형문화재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원형성’입니다. 이는 단순히 외형적 복원이 아닌, 기술이나 예술 표현이 내포한 정신적 가치, 그리고 전승자의 정체성과 깊은 관련을 가집니다. AI가 이를 학습할 경우, 대체로 영상, 음성, 동작 등의 시각적·청각적 데이터를 중심으로 표면적인 특징을 수집하고 분석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판소리의 경우, 소리꾼의 감정, 호흡, 창법의 깊이는 무시된 채 단지 음의 높낮이와 반복 패턴만이 학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처럼 AI가 무형문화재를 학습하는 과정은 종종 그 문화의 ‘살아 있는 전통’이라는 본질을 훼손할 위험이 있습니다. 디지털 민속 콘텐츠로서의 활용이 의도되더라도, 단순 재현에 그치지 않고 문화적 맥락과 인간적 감각이 반영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AI가 단독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전문가의 깊이 있는 해석과 협업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디지털 민속은 전통의 보존이 아닌, 전통의 변형 혹은 소비만을 강화하게 될 수 있습니다.

 

전승 공동체의 권리와 문화 수용의 경계 문제

무형문화재는 단지 기술이나 예능의 문제가 아닌, 특정 공동체의 정체성과 깊은 관련이 있는 문화자산입니다. 예를 들어 특정 마을에서만 전승되는 탈춤, 혹은 특정 가족 내에서만 이어지는 장신구 제작 기술은 단순히 퍼블릭 도메인의 데이터가 아니라, 공동체 내부의 경험과 신념이 반영된 고유한 지적 자산입니다. 그런데 AI는 이러한 데이터를 ‘정보’로만 간주하고 학습·재생산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전승 공동체의 문화적 권리를 침해할 수 있으며, 디지털 민속 콘텐츠가 외부 플랫폼에서 무분별하게 상업화되는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AI 모델이 무형문화재를 기반으로 생성한 콘텐츠가 원 공동체와 무관하게 유통될 경우, 전통의 주체는 사라지고 타자의 소비만 남게 됩니다. 따라서 디지털 민속 콘텐츠의 개발 과정에서 AI가 사용하는 무형문화재 데이터는 반드시 지역 공동체의 동의와 협력을 전제로 수집되고 활용되어야 합니다. 전통은 공유될 수 있지만, 임의로 소유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원칙이 무너지면 디지털 민속은 기술적 진보가 아닌 문화적 식민화가 될 수 있습니다.

 

무형문화재 데이터의 정당한 소유권과 활용 윤리

AI가 학습하는 콘텐츠는 기본적으로 ‘데이터’입니다. 그런데 무형문화재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대개 공식적인 기록보다는 구술, 체험, 공동체 활동 등의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데이터화 과정에서 정당한 소유권과 저작권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의 동작을 AI가 촬영하고 학습했다면, 그 결과물을 누가 소유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필수적입니다. 기업이 개발한 AI 모델이 해당 기술을 활용해 콘텐츠를 제작·수익화할 경우, 원 보유자 혹은 공동체는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는가도 함께 검토되어야 합니다. 디지털 민속은 이처럼 데이터 윤리, 저작권 보호, 공동체 동의라는 복합적 요소가 함께 작동해야만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무형문화재는 공공의 자산이자 개인의 삶이며, AI 기술은 그 경계에서 작동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AI 개발자뿐 아니라 민속학자, 법률 전문가, 지역사회 리더가 함께 협업하는 방식의 다학제적 연구와 설계가 요구됩니다. 전통은 누구나 향유할 수 있지만, 아무나 마음대로 소유해서는 안 되는 문화입니다.

 

디지털 민속 콘텐츠의 신뢰성과 문화적 진정성 문제

무형문화재를 기반으로 한 AI 콘텐츠가 대중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하면, 그 정보의 신뢰성과 문화적 진정성은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예를 들어 AI 기반 ‘가상 소리꾼’이 판소리를 시연하는 콘텐츠가 등장했을 때, 그 창법과 어휘, 표현 방식이 실제 전통의 맥락과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필요합니다. 단지 화려하고 정교한 퍼포먼스만으로는 문화적 콘텐츠로서의 가치를 보장할 수 없습니다. 디지털 민속의 관점에서는, AI 기반 콘텐츠가 기술적 완성도뿐 아니라 문화적 의미와 지역성, 인간성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는지를 평가해야 합니다. 또한 AI가 생성한 콘텐츠임을 명확히 고지하고, 사용자에게 원형 정보와 차이점을 안내하는 ‘설명 가능성’이 확보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형문화재에 대한 왜곡된 이해가 누적되고, 결과적으로는 전통에 대한 왜곡된 기억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디지털 민속 콘텐츠는 정보의 보급 이전에 ‘문화의 존중’이라는 원칙을 지켜야 하며, 이는 AI 기술이 해결할 수 없는 인간 중심의 윤리적 판단에 기반합니다.

 

디지털 민속의 교육적 실천으로서의 무형문화재 AI 활용 가능성 

AI 기술의 적용은 무형문화재 전승의 방식에 근본적인 전환점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특히 교육 분야에서 디지털 민속 콘텐츠를 활용한다면,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와 접근성은 크게 향상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청소년들이 전통공예나 농악, 판소리 등 무형문화재를 단순히 책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AI가 해설해 주는 가상 시연이나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통해 실시간으로 접한다면, 그 체험은 훨씬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학습으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이는 전통문화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추고, 미래 세대의 관심과 흥미를 끌어내는 데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때도 기술의 수단화와 상업화를 경계해야 하며, 교육용 디지털 민속 콘텐츠가 전통의 맥락과 가치를 손상시키지 않도록 민속학자, 전승자, 교육 전문가 간의 협업이 중요합니다.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 기술적 화려함에만 집중하면, 결국 진정성이 결여된 표피적 학습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AI는 교육에서 유용한 도구이지만, 무형문화재의 교육은 감정과 공동체의 기억을 동반하는 통합적 체험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디지털 민속 콘텐츠는 기술적 도구가 아니라 ‘문화의 언어’를 번역해 주는 통로가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선 인간 중심의 설계가 핵심입니다.

 

지속 가능한 디지털 민속 생태계를 위한 정책적 생각

무형문화재를 AI가 학습하고 디지털 민속 콘텐츠로 활용하는 과정은 개인의 기술력이나 기업의 역량만으로는 결코 지속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려면,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공공 정책과 제도적 인프라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첫째, 문화재청과 지자체는 디지털 민속 콘텐츠 개발에 있어 ‘데이터 수집→AI 학습→문화해석→공동체 환원’이라는 순환적 구조를 지원하는 모델을 제시해야 합니다. 단순히 무형문화재를 디지털화하는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 개발에 필요한 민속 전문인력, AI 윤리 전문가, 지역 공동체 리더가 지속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구조적 틀을 설계해야 합니다. 둘째, AI가 학습한 무형문화재 데이터를 공공 자산으로 규정하고, 이의 사용·배포·수익화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하는 법적·제도적 기준이 필요합니다. 이는 전승자와 지역사회가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고, AI 기술의 남용을 방지하는 장치로 작동해야 합니다. 셋째, 민간 기업과 문화기관, 학교 등이 디지털 민속 콘텐츠를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공유 플랫폼 구축도 시급합니다. 이러한 다층적 시스템이 정착될 때, AI는 단지 기술이 아니라 공동체의 문화유산을 지켜주는 파트너가 될 수 있습니다. 전통의 가치는 기술로 확장될 수 있지만, 그 확장을 지탱하는 것은 결국 공동체적 윤리와 문화적 책임입니다.